[로팩트 손견정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후속조치를 발표한 직후, 대법관 13명 전원이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법률가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민변, “대법관들 인식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드러낼 뿐”
먼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김호철)은 “대법관 일동의 명의로 발표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대법관들의 입장’에 대하여, 우리 모임은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이 대법관의 업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된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법원행정처가 재판부와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 대법원에 속해 있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 속에, 대법원과 청와대의 ‘윈-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사실마저 드러난 지금, 의혹을 만든 당사자들이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표현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한마디로 위 대법관들의 입장은 언어도단에 불과한 것으로, 대법관들의 인식이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드러낼 뿐”이라면서, “재판거래의 핵심 주체란 의혹을 받고 있는 대법관들은 더 이상 의혹을 덮으려는 듯한 집단적 의사표명 등을 자제하고 향후 겸허히 검찰 수사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치득 변호사, “대법관들 심증 이미 형성된 사건 수사해 봤자 무죄 뻔한데 검찰 기 쓰고 수사할 턱 없다.”
손치득(사법연수원 28기) 변호사도 15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정조사가 어떤가-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대법원장의 선택’이라는 글을 올려, “대법관들은 더 나아가 의혹들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판사 '뒷조사'는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재판 거래'도 실제 재판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확신이 입장문에 흥건했다.”면서, “대법원은 이미 무죄를 선고했는데, 대법원장이 검찰에 수사협조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이어 “이미 내려진 판결들을 모아 청와대에 생색을 내기 위해 그런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지 설마 재판 거래를 도모하지는 않았겠지 하면서도, 공개된 자료의 '사전 교감', '물밑에서 조율',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등의 표현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면서, “재판 거래 의혹을 사고 있는 KTX 해고 승무원 사건, 원세훈 국정원장 대선개입 사건, 통진당 지방의원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의 판결을 보면, 대법관들의 손사래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심이 터무니없지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손치득 변호사는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행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법언처럼 사법작용에 부적절한 간섭이 있다고 의심이 들게 하는 어떠한 사유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위의 ‘재판 거래’ 의혹 사건들에서 ‘실체적 정의’가 행해졌는지는 차치하고, 과연 ‘정의가 행해지는 것처럼’이라도 보였는가.”라면서, “대법관들의 심증이 이미 형성된 사건을 수사해 봤자 무죄가 뻔한데 검찰이 기를 쓰고 수사할 턱이 없다. 법관 개인의 처벌이 목표가 아닌 바에야 성과가 불투명하고 밀실의 검찰 수사보다는 사법부 폐해와 개혁 방향을 국민들이 직접 지켜볼 수 있는 국정조사가 더 ‘옳은’ 방향이 아닌가”라고 제안했다.
박판규 변호사, “이번 성명 참여 대법관들 ‘심증 공표’ 상고심 사건 모두 회피해야”
16일에는 판사출신의 박판규(37기) 법무법인(유) 현진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법관들의 입장 표명을 읽어봤다.’는 글을 올려, “재판 거래에 관한 합리적인 의혹들이 쏟아진 상황에서 “대법관들은 이것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 그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게 참으로 안쓰럽다.”면서, “거기에 안쓰러운 마음을 너머 우려되는 것은 이번 입장문이 이번 사건에 관한 13명 대법관들의 예단을 보여준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장회의와 고등부장회의는 대법원장이나 판사회의가 수사의뢰(심지어 수사촉구도)를 하는 것조차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대법관들이 앞으로 있을 수사내용 중 재판거래와 관련해서는 대법관들으로서의 심증이 부정적임을 미리 공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이게 어떤 일이냐면 판사가 1명뿐인 어느 지역에서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려는데, 판사가 그 사건 중 일부 혐의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재판은 무릇 공정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외관에 있어서도 공정해 보여야 하기에,’ 일단 이번 성명에 참여한 대법관들은 나중에 상고심 사건 모두 회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희원 교수, “대법관들 사법농단의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심히 오염돼, 사법농단사건 재판할 수 없는 사법초유의 비상사태”
특히 노동법학자인 강희원(사법연수원 15기)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6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고영한 선임대법관 등 대법관 13명은 입장문을 통해 재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변하면서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면서,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사건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는 현재의 사법절차에서 적지 않은 딜레마(dilemma)에 빠져 있다.”고 걱정했다.
이어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관련자를 처벌하려면 기소를 해야 할 텐데, 그것이 가능할지가 우선 의문이고, 또 검찰이 수사결과에 따라 이 사건을 기소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면서, “그러면 검찰이 수사만 하여 사실관계를 지금보다 약간 자세하게 밝혀내는 정도에 그치고 검찰 선에서 이 사건을 종결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검찰의 수사결과는 이미 불기소(不起訴)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검찰과 대법원이 짜고 치는 화투놀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만약 검찰이 진정으로 이 사건을 기소한다고 하더라도 위 13명의 대법관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도 최종적으로 재판할 것이 아닌가? 그들이 이미 입장문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최종판결을 내리고 있으니 재판의 결론은 뻔하지 않겠는가?”라면서, “이 사건은 위 13명 대법관들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이른바 ‘자기사건(自己事件)’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대법관들은 이미 사법농단의 치명적인 바이러스(fatal virus)에 심히 오염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들이 공평무사하게 자기사건을 어떻게 재판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13명의 대법관들은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을 회피해야 하지 않은가? 그렇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비상사태”라고 우려했다.
강희원 교수는 “현행의 헌정질서에는 특별검사제도는 있지만, 이와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특별법원을 구성할 수 있는 제도(이를테면, 특별재판제도)는 없다.”면서, “최종심(상고법원)으로서 현재의 대법원이 이 사건을 재판해서는 아니 되거나 재판할 수 없는 사법초유의 비상사태가 닥쳐오고 있지 않는가?”라고 깊이 우려했다.
다음은 대법관 13인이 15일 발표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대법관들의 입장’ 전문이다.
(사진=대법원) |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로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되고 아울러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실망을 안겨드린 데 대하여 대법관들은 참담함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1. 재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하여는 대법관들은 이것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이와 관련하여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깊은 우려를 표시합니다.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의 재판부와는 엄격히 분리되어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재판사무에 원천적으로 관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법원의 재판은 합의에 관여한 모든 대법관이 각자의 의견을 표시하여 하는 것이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인 대법원장 역시 재판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을 뿐입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독립하여 대등한 지위에서 합의에 참여하는 대법원 재판에서는 그 누구도 특정 사건에 관하여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판결이 선고되도록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2.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은 2018년 6월 1일과 6월 12일 사법행정권 남용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깊이 있게 논의를 하였습니다.
사법불신을 초래한 사법행정 제도와 운영상의 문제점에 대해서 철저한 사법개혁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였습니다.
아울러 사회 일각에서 대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도 있는 양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하여는 당해 사건들에 관여하였던 대법관들을 포함하여 대법관들 모두가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되었습니다.
3. 이와 같은 형태로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하여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의구심을 해소하고 법원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의견을 밝힙니다.
2018. 6. 15.
대법관 일동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팩트(LawFact)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