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실적 달성을 위해 실명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외국인 명의 계좌를 개설해줬다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연루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우리은행 부지점장이 항소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춘천지방법원 형사1부(재판장 김청미 부장판사, 박현기·허경은 판사)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위반 방조와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여성 은행원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춘천지방법원 2020노801)
우리은행 모지점 부지점장인 A씨('72년생 여성)는 과거 은행 고객으로 알게 된 화장품 판매업자 B씨의 소개로 2018년 10월 23일부터 2019년 2월 18일까지 여권사진만으로 여러 명의 중국인 계좌를 개설해 줬으나 해당 계좌들 중 일부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대포통장으로 활용되면서 공범으로 몰려 형사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2018년 7월경 우리은행 부지점장으로 재직하면서 신규 고객 유치 등의 실적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중, B씨에게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할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재판에서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위반방조 및 전자금융거래법위반에 대해 고의가 없었다. 금융기관 종사자인 피고인이 그 업무에 따라 통장 등을 발급해 배송해 준 것은, 전자금융거래법이 규정하고 있는 “접근매체의 전달”에 해당하지 않는바, 전자 금융거래법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1심은 유죄로 판단했다.
1심인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형사2단독 이재원 판사는 “피고인은 신규 고객 유치 등의 실적에 부담을 느끼던 중 대포통장 및 보이스피싱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직접 대면 확인을 하지 아니한 채 개설되는 중국인 명의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등 범행에 이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금융기관 종사자로서의 책임감을 전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다수의 금융계좌를 개설했다.”면서, “비정상적으로 개설한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사용돼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시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30년 가까이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2017년경부터 적극적인 영업방식을 취해 수많은 중국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해 왔는 바, 피고인이 아무리 실적 향상을 위해 외국인 계좌개설자를 모집했다고 해도 당시 피고인에게 생계와 노후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고서 대포계좌 개설을 의욕하거나 대포계좌로 사용되는 것을 묵인할 만한 동기나 유인이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이 사건 계좌를 개설하면서 계좌개설신청인의 실명확인의무를 매우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좌개설 당시 실명확인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는 점을 가지고 ‘특정 보이스피싱 관련 범행’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범의가 존재한다고 바로 인정하는 것은 고의의 인정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계좌개설신청인들에 대한 실명확인의무를 게을리한 부주의로 계좌를 개설하고 접근매체를 발급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관련 범행에 이용될 것임을 인식했다고 바로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 “또한 접근매체가 전달돼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에 사용됐다는 결과만 가지고 상호간에 순차적 공모관계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설시했다.
아울러 “검사는 피고인이 개설한 계좌가 사고계좌로 등록돼 2018년 11월경부터 3번 이상 사고계좌 등록 통보 메일이 왔다는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증거로 들고 있우너, 사고계좌는 이 사건 계좌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이 또한 추상적인 범죄 이용 가능성에 대한 인식으로 보아야 할 것으로, 이를 들어 피고인의 범행에 대한 공모관계와 고의가 추단된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