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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에게 타인 계좌번호 요구만 해도 처벌 금융실명법조항, 위헌”

헌법재판소 "국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침해", 재판관 8대1 결정
[한국법률일보] 은행 등 금융회사 종사자에게 타인의 계좌번호 등 금융거래정보 제공을 요구한 것만으로 형사처벌하는 금융실명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대상 법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국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판단이다.

헌법재판소는 24일 누구든지 금융회사등에 종사하는 자에게 거래정보등의 제공을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시 형사처벌하는 금융실명법 조항에 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81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2020헌가5)

A씨는 2018. 8. 27. 은행원 B씨에게 C씨의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한 혐의로 약식기소돼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해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이 계속 중이다.

A씨는 이 재판 중에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 41항 및 제6조 제1항 중 4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부분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0. 2. 20. A씨의 신청을 <금융실명법> 6조 제1항의 처벌 규정 중 같은 법률 제4조 제1항 본문의 누구든지 금융회사등에 종사하는 자에게 거래정보 등의 제공을 요구해서는 아니 된다와 관련된 부분에 대한 것으로 보고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위헌제청이유로 한 개인이 타인과 사이에 경제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시적인 동의 없이 타인의 금융거래에 관한 거래정보 등을 알 필요가 생길 수 있고, 금융거래에 관한 사생활의 비밀 유지는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에게 그 누설의 금지를 강제하는 것으로 충분히 보장될 수 있음에도 심판대상조항은 이를 금지하고 위반 시 형벌을 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심판대상조항은 비례의 원칙에 반해 국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고 적시했다.

제청신청인은 제청법원의 위헌제청이유에 더해 심판대상조항은 요구의 경위나 방법 등 거래정보 등의 요구가 타인의 사생활 영역에 대해 발생시키는 위험의 정도를 고려하지 아니하고 일률적으로 이를 금지하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과중한 형사제재를 과하고 있다.”면서,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해 국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뿐만 아니라 행복추구권과 알 권리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헌법재판소는 먼저 "심판대상조항은 금융거래정보의 제공요구행위 자체만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제공요구행위에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행위가 수반되지 않거나, 금융거래의 비밀 보장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행위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또한 명의인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의 금융거래정보가 필요해 금융기관 종사자에게 그 제공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등 금융거래정보 제공요구행위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죄질과 책임을 달리한다."면서, “그럼에도 심판대상조항은 정보제공요구의 사유나 경위, 행위, 태양, 요구한 거래정보 등의 내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에게 거래정보 등의 제공을 요구하는 것을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최소침해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이 중요한 공익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으나, 심판대상조항이 정보제공요구를 하게 된 사유나 행위의 태양, 요구한 거래정보의 내용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일률적으로 일반 국민들이 거래정보의 제공을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하는 것은 그 공익에 비해 지나치게 일반 국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이선애 재판관은 홀로 "심판대상조항은 금융실명제의 실시와 관련한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이라는 공익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러한 공익은 타인의 금융거래에 관한 정보제공을 자유롭게 요구할 수 있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 인한 사익보다 크다."면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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