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팩트 손견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 형사처벌 사건과 관련해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지난달 31일 대법원에 제출했다고 8일(수)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이달 30일 병역법 제88조 제1항과 예비군법 제15조 제9항 위반 사건에 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앞두고, 병역법과 예비군법 해당 처벌 조항의 ‘정당한 사유’가 양심이나 종교에 따른 병역거부를 포함하는지 여부에 대한 의견을 인권위에 요청한바 있다.
<관련 법조문>
병역법 제88조(입영의 기피 등)
①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다만, 제53조제2항에 따라 전시근로소집에 대비한 점검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지정된 일시의 점검에 참석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한다.
1. 현역입영은 3일
2. 사회복무요원 소집은 3일
3. 군사교육소집은 3일
4. 병력동원소집 및 전시근로소집은 2일
예비군법 제15조(벌칙)
⑨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1. 제6조제1항에 따른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아니한 사람이나 훈련받을 사람을 대신하여 훈련받은 사람
2. 제6조제2항에 따른 지휘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
3. 제8조제1항에 따른 예비군의 임무수행에 필요한 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한 사람
헌법재판소는 2018. 6. 28. 병역기피자 형사처벌을 내용으로 하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으나, 같은 법 제5조 제1항은 대체복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양심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고, 이에 따라 헌법불합치 조항 개정 전까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등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 인정 여부가 원칙적으로 개별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게 됐다.
인권위는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2005년 12월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한 이후 여러 차례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해왔고, 2016년 11월에는 헌법재판소에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형사처벌에서 제외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함으로써,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공익에 기여할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과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2016년 10월 최초의 항소심 무죄 판결(광주지방법원 2015노1181)이 선고된 후 1심 무죄 판결 선고가 급증해, 지난 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72건의 1심 무죄 판결이 선고됐다. 2018년 2월에는 두 번째 항소심 무죄 판결(부산지방법원 2017노3008)이 선고됐다.”면서, “현재 20대 국회에는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세 건 발의되는 등 형사처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엔 인권위원회(현재 인권이사회)는 1987년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가 ‘세계인권선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의해 보호되는 것임을 최초로 확인했으며, 1989년에는 이를 ‘권리’라고 명명하는 등 그 견해를 점차 확장?발전시켜 왔다. 특히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06년 한국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제기한 개인통보사건을 인용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자유권규약’ 제18조 위반이라며 한국 정부에 이들의 석방과 구제조치를 요구했다.”면서,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볼 때 우리나라 역시 충분히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할 수 있으며, 1998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결의 제77호와 위원회의 2005. 12. ‘양심적 병역거부권 및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권고’ 등에서 권고한 바와 같이, 대체복무의 인정 여부를 공정하게 판정할 기구와 절차를 마련하고, 구제활동이나 환자수송, 소방업무 등 사회의 평화와 안녕, 질서유지 및 인간보호에 필요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현역복무기간의 약 1.5배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합숙 형태로 제도를 도입하되 차츰 기간단축과 복무형태의 변화 등을 통해 제도를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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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12.(토) 헌법재판소 앞,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 생활을 했던 이조은씨가 감옥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전쟁없는 세상 & 인권위 편집) |
인권위가 소개한 대체복무제에 관한 해외 사례는 다음과 같다.
대체복무제는 1903년 호주가 최초로 도입했고, 영국은 1916년 최초로 대체복무법을 성문화했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과 세계대전 중에도 종교교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했고, 1973년 징병제를 폐지했다.
통일 전 서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동서로 분단되어 냉전 중이던 1949년, 헌법인 기본법 제4조 제3항에서 종교와 양심의 불가침성을 규정하고, 이에 근거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했고, 1956년에 기본법 제7차 개정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명문화했다. 또한 2003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법을 제정했는데, 대체복무를 신청함에 있어 사유와 신청시한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며, 대체복무기간과 군복무기간은 9개월로 동일하게 운영하면서 주로 병원, 공공복지분야 등에서 출퇴근 형식을 원칙으로 했고, 2011년 징병제가 폐지되면서 대체복무제도 역시 폐지됐다.
아르메니아는 1988년부터 6년간 아제르바이잔과 전쟁 후 1994년 휴전했으나 소규모로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1월 대체복무법을 시행했다. 당초 군복무기간 24개월의 1.75배인 42개월 동안 대체복무를 하도록 했으나, 유럽평의회로부터 36개월로 축소할 것을 요구받기도 했다. 대체복무 장소와 대체복무복장에 관한 규정 상 대체복무자들은 정신병원, 고아원, 진료소 등에서 근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2011년 7월 경 유럽인권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문제된 ‘바야탄 대 아르메니아’ 사건에서 자유권규약 제18조와 같은 내용으로 규정돼 있는 유럽인권협약 제9조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인정되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신청자를 구금한 것이 위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결을 한 후, 아르메니아 정부는 민간대체복무법 을 개정하고 수감 중이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석방해 2017년 6월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분석 보고서(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 Analytical report of the 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에서 모범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대만은 2000년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도입 당시 22개월의 현역복무기간의 약 1.5배인 33개월로 정하였다가 2003년에는 가산기간을 4개월로, 2007년에는 2개월로 단축하였고 2018년부터 모병제로 변경하면서 현역복무와 대체복무자 모두 4개월 복무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대체복무제를 처음 실시할 당시의 복무분야는 6종류(경찰역, 소방역, 사회역, 환경보호역, 교육서비스역, 문화서비스역)였으나, 이후 16종류까지 증가됐고, 2021년 대체복무제도도 폐지될 예정이다.
포르투갈은 헌법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규정하고 있는바, 법률에 따라 병역 의무의 대상이 되지만 무장 병역에 부적합한 자로 판정을 받은 국민들은 그들의 상황에 적합한 비무장 병역 또는 대체복무를 이행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무장 병역의 경우와 동일한 기간 및 노동 강도를 지닌 대체복무를 이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인권위는 현재 대체복무제도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추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에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팩트(LawFact)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