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팩트 김명훈 기자] 대북 첩보활동 등 특수임무를 수행하다 숨진 국가유공자의 유족이 기한 내 보상금 신청을 못했더라도 ‘유족의 생계안정’이라는 법률의 입법취지를 살려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민권익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캡쳐화면 편집 |
특별한 희생이 요구되는 특수임무수행과 관련해 국가를 위하여 희생을 한 특수임무수행자와 유족에 대해 실질적인 보상을 함으로써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국민화합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취지로 2004년 1월 제정되고 같은 해 7월 시행된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특임자보상법)은 2016년 1월 마지막으로 개정돼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보상금을 신청하도록 해 2016년 4월 19일부로 종료된 바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박은정)는 “국가유공자의 유족으로 인정받았는데도 기한 내 보상금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유족 박 모(63세)씨의 고충민원에 대해 ‘보상금 지급을 재심의하고 유사 사례의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개선 할 것’을 국방부에 시정권고 및 의견표명을 했다고 4일(수)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박 씨의 부친은 1962년에 대북 첩보활동에 투입됐다가 귀환하지 못해 당시 ‘미복귀 전사자’로 분류됐다. 박 씨의 모친, 동생 등 일가족은 1971년에 아버지 호적에서 모두 제적됐고 모친까지 사망했다. 박 씨 형제는 각각 다른 고아원에 옮겨졌으나 동생마저 안타까운 사정으로 사망해 박 씨 혼자 남게 됐다.
박 씨는 이후 고아원 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이름을 바꿨고 본가 친척들과 교류를 끊은 채 1980년 법원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호적을 취득해 40여 년간 경기도 용인과 강원도 태백 등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이 2004년 제정됐으나, 박 씨의 부친은 전사자로 확정되지 않아 보상대상에서 박 씨는 제외됐다. 그러나 다행히 2016년 1월 법이 개정돼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보상금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국방부는 미귀환 전사자 가운데 박 씨의 아버지도 전사자 확정을 추진하는 한편, 동사무소를 통해 유족을 수소문하고 마감 하루 전인 같은 해 4월 18일 박 씨의 사촌을 찾아 보상금 신청을 안내했다. 박 씨의 사촌은 ‘후순위 유족 자격’으로 보상금 지급을 신청했는데, 한 달 뒤 국방부는 전사확인서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친아들인 박 씨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 씨의 아버지는 2017년 2월 20일 국가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국방부는 박 씨가 ‘민법’상 재산상속인임을 확인했고, 박 씨는 국방부에 재산상속인 자격으로 보상금 지급을 신청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3개월의 보상금 신청기간이 지났다며 지급을 거부하고 사촌이 신청한 ‘후순위 유족보상금’ 신청도 선순위 유족인 박 씨가 있다며 기각했다.
이에 박 씨는 “부친이 국가를 위해 희생을 해 온 가족이 죽거나 흩어지는 고통을 당했는데도 국가는 또 다시 형식적인 법 규정 만을 따지면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억울하다.”며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박 씨의 경우와 같이 기한 내 보상금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방부가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례는 현재까지 모두 15건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권익위의 조사에서 박 씨는 “부친이 국립 명문대를 나와 언어소통능력이 뛰어나 첩보활동에 투입됐으나 아버지 사망으로 온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면서 “특수임무수행에 투입돼 가정파탄이 난 사실을 국방부가 확인했고 유족이란 사실이 입증됐는데도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권익위는 “박 씨의 부친이 특수임무수행자 전사자로 국가유공자가 된 사실 등을 박 씨는 전혀 알지 못했고, 확인한 뒤에도 법원을 통해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해야 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기한 내 신청은 불가능했다.”고 보았다.
또 “박 씨가 유족으로서는 선순위 보상금 신청권자로 인정받은 점, 국가를 위해 특별히 희생한 특수임무수행자 유족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의 입법 취지에 반하지 않는 점, 모든 객관적인 사실이 부합함에도 신청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보상금 지급을 거부한 점 등을 고려해 국방부의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특임자보상법은 그동안 보상신청기간 내에 보상 대상자임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신청절차를 몰랐거나, 알아도 글을 쓸 줄 모르는 등의 사유로 보상금 등 신청을 하지 못한 특수임무수행자 및 그 유족들이 남아 있음을 이유로 4차례 법개정을 통해 보상금 등 지급신청기한을 연장해 온 바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권근상 고충처리국장은 “관련 법률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마땅히 유족보상금을 지급하여야 함에도 법적으로 명확한 근거규정이 없어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해당 법률에 특수임무수행자 보상금 신청인의 지위 승계에 관한 근거규정을 마련해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팩트(LawFact)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