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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팩트 손견정 기자]
대법원은 16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의료법의 위임 없이 당직의료인의 배치기준을 규정한 의료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그 기준에 따라 기소된 요양병원장인 피고인 A씨(79세)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확정했다.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요양병원에 약 130명의 입원환자의 진료 등에 필요한 당직의료인을 두어야 함에도 2014. 6. 24.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당직간호사 3명만 배치하고 당직의사를 두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제1심 법원은 “‘당직’이라는 단어는 근무하는 곳에서 숙직이나 일직 따위의 당번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라면서 “응급환자와 입원환자의 급박한 진료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만든 의료법 제41조 취지에 비춰봤을 때 병원 외부에 있다가 호출이 있으면 병원으로 와서 근무하는 경우에는 당직의료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A씨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한 A씨는 항소를 제기했고, 제2심 항소심법원은 "법률에 구체적인 위임 없이 의료법 시행령(대통령령)으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당직의료인을 배치한 이상 의료법 제41조를 위반했다고 할 수 없음에도 의료법 규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미친 위법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엔 검찰이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의료법의 위임 없이 대통령령인 의료법 시행령이 각종 병원에 두어야 하는 당직의료인의 자격과 수를 규정한 경우, 의료법 시행령이 정한 배치기준을 준수하지 아니한 피고인을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의 다수의견(대법관 11명)은 “법률의 시행령은 모법인 법률의 위임 없이 개인의 권리?의무에 관한 내용을 변경·보충하거나 법률에서 규정하지 아니한 새로운 내용을 규정할 수 없다. 특히 법률의 시행령이 형사처벌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면서 법률의 명시적 위임 범위를 벗어나 처벌의 대상을 확장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그러한 시행령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서 무효”라고 판시했다.
즉 “의료법 제41조가 ‘환자의 진료 등에 필요한 당직의료인을 두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인데도, 의료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은 당직의료인의 수와 자격 등 배치기준을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의료법 제90조에 의한 처벌의 대상이 되도록 하여 형사처벌의 대상을 신설 또는 확장하였으므로, 의료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원심은 의료법의 위임 없이 의료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에 규정된 당직의료인의 수를 준수하지 아니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고,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기초한 것으로 정당하고, 죄형법정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하면서 무죄 취지로 상고를 기각했다.
한편 대법관 이상훈과 김용덕은 별개의견을 통해 “의료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이 당직의료인 제도를 시행하거나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침이나 준칙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므로 그 시행령 조항을 무효라고 단정하여서는 아니 되나, 의료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이 의료법의 구체적 위임을 받지 아니한 이상 의료법 제41조와 결합하여 처벌의 근거규정이 될 수는 없다”면서, “이 사건에서도 위 시행령 조항에서 정한 당직의료인의 수를 충족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의료법 제41조, 제90조를 적용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은 대통령령 등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한 경우 이를 무효로 선언할 수 있는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법률의 위임 없이 대통령령으로 형사처벌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의 원칙과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서 위법하다고 판단하여 의료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을 무효로 선언한 것”이라면서, “대법원이 형사사건에서 1999년 무효 선언을 한 후 18년만에 이 사건에서 대통령령인 의료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을 무효로 판단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종래 시행령 등에 대한 무효 선언을 한 마지막 판결은 대법원 1999. 2. 1. 선고 98도2816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한편 국회는 대법원이 이 사건 전원합의 기일을 지정한 후인 2016. 12. 20. 법률 제1438호로 의료법을 개정하여 제41조 제2항으로 “당직의료인의 수와 배치 기준은 병원의 종류, 입원환자의 수 등을 고려하여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라는 위임규정을 신설했다.
따라서, 이번 판결에서는 A병원장이 처벌을 면했지만, 오는 6월 21일부터는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당직의료인 수와 배치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의료법 제90조에 의한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팩트(LawFact)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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